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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예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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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후(1898~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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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성예총 댓글 0건 조회 1,121회 작성일 : 1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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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후(1898~1941)난파는  자신이  주재  간행한  三光에  시,  소설,  수필,  번역소설  등을  발표하였다.  이  잡지에  그는  「금패의  행방」과  번역소설  「사랑하는  벗에게」  등을  발표하였으며  또한  시  「부슬비  오는  아츰」,  「눈개인  아츰」  등을  싣기도  하였다.  그  이후  그는  장편  「최후의  악수」,  「허영」  등을  발표하였다.  이들  장편소설  외에도  단편소설로는  「처녀혼」,  「물거품」,  「비겁한  자」,  「폭풍우  지난  뒤」,  「만종」  등을  발표하였다.  난파의  소설세계는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째는  1920년대  사회의  전통적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의  갈등이나  인간성의  깊이  있는  탐구를  주제로  삼는  경우이며  두  번째는  음악가나  화가를  주인공으로  한  형상소설의  세계가  그것이다.  신구세대의  갈등과  가치관의  대립은  장편소설  「최후의  악수」에서  잘  그려지고  있으며,  장편  「허영」은  악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람에게  분수없는  허영의  추구가  얼마나  인간성을  황폐하게  하는가  하는  문제를  살피고  있다.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은  대부분  그  주인공의  예술적  성공을  그리고  있다.  단편  「물거품」은  주인공인  화가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여  자살하지만  그의  그림은  유럽의  미술전람회에서  높게  평가된다는  줄거리의  소설이다.  이  같은  줄거리는  예술가의  창조적  고뇌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난파는  평생  일관되게  예술을  위한  예술보다는  인생을  위한  예술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제는  그  밖의  다른  소설,  곧  「향일초」,  「금패의  행방」  등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이상의  예에서  보듯  1920년대  초기  단편소설들  가운데  이른바  예술  소설로는  난파가  그  첫  시도를  보인  것으로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1925년  이후  홍영후는  음악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러나  주옥같은  작품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율이  ‘요나누끼’  음계라는  일본  전통의  음계를  주조로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결국  대동아  공영권의  달성을  소망하는  소위  황국정신의  구현을  기치로  활동한  친일  음악인으로  판명되었다.  이  같은  그의  왜색  음악이  모방과  이식에  불과  했는지는  또  다른  논의와  입증이  다각적으로  있어야  할  것이다.  남양면  활초리(화성시  남양읍  활초리)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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