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천상(任天常) 1754년(영조 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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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성예총 댓글 0건 조회 1,731회 작성일 : 15-02-26본문
조선 순조 때의 학자․문신으로 본관은 풍천(豊川), 화성 출신이다. 자는 현도(玄道), 호는 궁오(窮悟), 희익(希翼)의 아들이다. 1777년(정조 1)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795년(정조 19)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06년(순조 6) 홍문관(弘文館)에 등용되고 벼슬이 교리(校理)에 이르렀다. 학문이 깊고 문장에 능하여 문명(文名)이 높았다. 저서로는 『궁오집(窮悟集)』이 있다.
우하영(禹夏永) 1741년(영조 17) ~ 1812년(순조 12)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로 본관은 단양, 수원부 호매절 어량천면 외촌(현 화성시 매송면 어천리)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대유(大猷). 호는 취석실(醉石室)․성석당(醒石堂)이다. 대사성 우성전의 직계 7대손, 첨추(僉樞) 택상(宅相)의 손자, 정서(鼎瑞)의 아들이다. 일찍이 백부 정태(鼎台)에게 입양되었다.
6세 때 어머니의 꿈에 공자(孔子)의 내임(來臨)을 알린 바 있어 어릴 때부터 집안의 큰 촉망을 받았다. 7세 때부터 조부로부터 경서의 제자음석(諸子音釋)과 연속귀절(聯屬句節)을 지도받아 이를 잘 따라 익혀 기대를 모았으며, 『사략(史略)』을 정독하였다. 이 무렵 조부에게서 작시(作詩)의 명을 받고
우하영(禹夏永) 1741년(영조 17) ~ 1812년(순조 12)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로 본관은 단양, 수원부 호매절 어량천면 외촌(현 화성시 매송면 어천리)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대유(大猷). 호는 취석실(醉石室)․성석당(醒石堂)이다. 대사성 우성전의 직계 7대손, 첨추(僉樞) 택상(宅相)의 손자, 정서(鼎瑞)의 아들이다. 일찍이 백부 정태(鼎台)에게 입양되었다.
6세 때 어머니의 꿈에 공자(孔子)의 내임(來臨)을 알린 바 있어 어릴 때부터 집안의 큰 촉망을 받았다. 7세 때부터 조부로부터 경서의 제자음석(諸子音釋)과 연속귀절(聯屬句節)을 지도받아 이를 잘 따라 익혀 기대를 모았으며, 『사략(史略)』을 정독하였다. 이 무렵 조부에게서 작시(作詩)의 명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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